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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이 이사하는 방법, 당근에서 이사 공구를 열었다

셩PM · 2026-09-18
이사는 프로젝트였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그냥 이삿짐센터 하나 잡으면 끝인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관리비 정산도 해야 하고, 보증금도 받아야 하고, 대출도 시간에 맞춰 처리해야 하고, 청소도 불러야 하고, 가전도 옮겨야 한다. 심지어 이것들이 순서대로 맞물려 있다. 몇 시에 돈이 들어와야 하고, 그다음 돈이 나가야 하고, 그 시간에 또 누군가는 집에 와야 한다. 이사가 아니라 거의 작은 프로젝트 하나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이삿짐센터를 알아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우리 아파트 사람들 다 같이 이사가는데, 왜 전부 따로 견적을 받고 있지? 나는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의 거의 마지막 입주자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정말 매일 이삿짐차가 빠져나간다.

여러 명이 같이 하면 한번에 더 많은 계약을 성사해서 매출이 크게 높아질텐데 할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나는 소비자보다 업체 입장에서 먼저 생각했다.예전에 집수리 중개 서비스를 했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한 집 한 집 따로 견적을 보러 가는 것보다, 같은 아파트에서 여러 집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면 업체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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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단 내가 먼저 다섯 군데 견적을 받았다. 그중 가격만 보지는 않았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했던 업체 두 곳으로 먼저 추렸다. 그리고 두 업체에 물어봤다. 같은 아파트에서 이사하는 사람들을 내가 모아볼 테니, 여러 집이 같이 계약하면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줄 수 있냐고. 둘 다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이 방식에 훨씬 적극적인 업체가 있었다. 그래서 그 업체를 골랐다.


그다음 당근에서 사람을 모집했다. 아파트 커뮤니티 카톡방에 가볍게 글을 올렸다.

하루 만에 10명 정도가 모였고, 최종적으로는 15명 정도의 연락처와 기본 정보를 업체에 전달했다. 당일에만 계약이 5건 넘게 나온 걸로 알고 있다. 그 이후 계약까지는 따로 세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계약을 마쳤는데도 지금도 가끔 한두 명씩 연락이 온다. 그럴 때마다 업체에 전달해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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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나는 기존 견적 대비 20% 정도 할인받았다. 다른 분들도 대부분 10% 이상은 저렴하게 계약한 걸로 알고 있다. 포장이사는 원래 금액 자체가 작지 않다. 그래서 10%만 할인돼도 체감 금액이 꽤 크다. 솔직히 나한테는 개이득이었다.


그런데 왜 업체는 10~20%나 깎아줄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그냥 여러 명이 사니까 싸게 해주는 건가 생각했다.

근데 직접 해보니까 조금 달랐다.


업체 입장에서도 실제로 비용이 줄어들었다.

원래 견적을 15건 보려면 기사님이 각 집을 따로 찾아가야 한다. 오늘 한 집, 내일 한 집. 차를 타고 이동하고, 주차하고, 집을 보고, 다시 이동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아파트였다. 한 번 와서 여러 집을 연달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비슷한 평수와 구조의 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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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한 명씩 찾아다니는 비용도 줄고, 견적을 보러 다니는 시간도 줄고, 한 번 방문해서 여러 계약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업체한테 단순히 “15명 데려왔으니까 싸게 해주세요”라고 한 게 아니었다. 거래를 만들어내는 비용 자체를 줄여준 셈이었다. 그 비용의 일부가 다시 가격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공동구매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공동구매는 단순히 많이 사서 싸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인플루언서들이 공동구매하는 걸 보면서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을 많이 모아오니까 싸게 파는 거겠지. 물론 그것도 맞다.


근데 이번에 내가 직접 해보니까 핵심은 조금 더 유통에 가까웠다. 흩어져 있던 사람을 한곳에 모으고, 각자가 해야 했던 탐색을 한 사람이 대신하고, 공급자는 한꺼번에 고객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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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양쪽에서 낭비되던 비용이 줄어든다. 나는 여러 업체의 견적을 먼저 받아봤고, 업체를 비교했고, 그중 커뮤니케이션이 괜찮은 곳을 추렸다. 이 과정이 나한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정보를 모으고, 비교하고, 정리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조건을 맞춰가는 일. 생각해보면 내가 회사에서 계속 해오던 일이기도 하다. 한 번만 해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 과정을 다시 할 필요가 없다. 좋은 공동구매는 마진을 억지로 깎는 일이 아니라, 유통 과정의 비효율을 줄이고 그 효율을 나누는 일이구나.


이번에 제일 크게 느낀 부분이었다. 아파트 커뮤니티 방 대화를 더 잦게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다른 업체의 견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저는 얼마 받았어요. 여기 친절했어요.저는 여기로 계약했어요. 이미 먼저 이사를 끝낸 사람은 실제 후기도 남겼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효과가 하나 더 생겼다. 사람들이 서로의 의사결정을 보면서 확신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플랫폼에서 모르는 사람이 남긴 후기 하나를 보는 것과는 좀 달랐다.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사하고 있고, 실제로 같은 업체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후에는 청소업체도 공구 요청도 받았다.

그 말을 듣고 아,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다음 수요가 또 보이는구나 싶었다.

이사를 하는 사람은 이사업체만 필요한 게 아니다. 청소도 해야 하고, 정리도 해야 하고, 물건도 버려야 하고, 가전도 옮겨야 한다.


이번에 미소, 아정당 같은 서비스도 써봤다. 예전에 내가 집수리 중개 서비스를 만들 때도 느꼈던 건데, 이 시장의 경험은 생각보다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플랫폼들이 견적을 받는 과정 자체는 많이 편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견적이 여러 개 오면 결국 내가 다시 비교해야 한다. 업체마다 전화가 오고, 같은 정보를 다시 설명하고, 견적을 또 비교하고, 일정도 하나씩 맞춰야 한다. 견적이 10개, 20개씩 들어오면 어느 순간부터 선택지가 많아진 게 아니라 그냥 정신이 없다. 약간 콜센터 시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예전에 집수리 서비스를 할 때 오히려 고객에게 보여주는 견적 개수를 줄이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선택이 더 잘 일어났다. 그때도 느꼈다. 선택지를 많이 주는 게 항상 좋은 경험은 아니다. 유저가 원하는 건 견적 20개가 아니라, 괜찮은 업체를 고르는 일을 좀 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공구에서는 그 역할을 내가 일부 대신했다.


그렇다고 이사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건 아니다. 문제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사업은 아니다. 이사는 너무 귀찮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몇 년에 한 번 있는 일이다. 그냥 며칠 고생하고 끝내버릴 수도 있다. 반면 이 과정을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해주려면 사업자는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유저가 느끼는 효용만큼 사업적으로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시장 규모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경험을 하고 “이사 시장에 엄청난 사업 기회가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재미있었던 건 따로 있다. 수요를 모으는 것만으로 생각보다 많은 비효율이 사라졌다는 것.


내가 한 일은 정말 별게 없었다.

견적 몇 군데 받아보고, 업체 고르고, 사람 모으고, 정리해서 업체에 전달하고, 중간에서 몇 번 커뮤니케이션한 게 전부다. 그런데 15명이 모였고, 실제 계약이 생겼고, 업체의 리소스가 줄었고, 참여자들은 더 저렴하게 계약했다. 내가 들인 리소스에 비해 만들어진 결과가 꽤 컸다.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공동구매라는 걸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공동구매는 싸게 사는 방법이라기보다, 흩어져 있는 수요를 모아 유통의 비효율을 없애는 방법에 가까웠다.


PM이 이사하면서도 이런 걸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