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AI로 일을 어디까지 넘길 수 있는지를 계속 실험하고 있다. 서비스를 하나 만들고, 배포하고, 사람들이 쓰는 걸 보고, 또 만든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알게 된 건 기술보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번 편은 누군가의 실제 업무를 하루 만에 자동화해본 이야기다. 만드는 데는 한 시간이 걸렸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데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대화 중에 일이 보였다
오랜만에 감사한 분을 만났다. 예전에 도움을 주셨고, 그때 들은 말로 힘을 받아 열심히 살아왔다.
고민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AI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내가 관심을 갖고 파고 있는 분야라, 또 그렇듯 혼자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매일 반복되는 비효율이 보였다. 상품조사였다. 여러 유통 채널을 돌며 새 상품을 찾고, 상세페이지를 읽고, 이미지와 성분과 문장을 조사표에 옮기는 일.
이건 내가 한번 실험해봐도 되겠다 싶었다. "오늘 만들어서 내일 자동화해드릴게요." 호언장담을 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아무런 이유도 댓가도 없다. 그냥 다른 사람의 워크플로우를 직접 손대서 AI로 일을 효율화해보는것 그걸 내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케이스도 적용되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두 시간이면 될 줄 알았다
처음에는 두 시간이면 끝날 것 같았다. 실제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오래 걸린 건 다른 쪽이었다. 로그를 읽고, 실제 워크플로우를 이해하고, 무엇을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정하는 일.
겉으로 보면 반복 업무다. 그래서 처음엔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이걸 AI로 자동화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니 반복 업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상품을 볼 만한 것으로 올릴지, 이게 정말 새로운 변화인지, 우리 제품 개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실제로 그 일을 이해해야 풀 수 있는 일.
그래서 일을 네 단계로 나눴다
우선 한시간정도 대화를 했다. 내 입장에서는 워크플로우를 설계하기 위한 인터뷰. 감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업무의 멘탈모델을 그리고 실제로 어떤 순서로 일하는지 다시 따라갔다. 리서치 후보는 어떻게 고르는지, 어떤 정보는 원문 그대로 남겨야 하는지, 어디부터가 전문가의 판단인지 확인했다.
상품조사는 찾기·채우기·걸러내기·결정하기 네 단계로 나뉘었다.
채널을 돌며 새 상품을 찾는 일
상품 정보와 이미지와 출처를 조사표에 채우는 일
이 상품을 볼 가치가 있는지 거르는 일
이 변화가 우리 제품 개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결정하는 일
앞의 세 단계는 반복되는 업무와 반복되는 판단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그 사람의 전문성이었다. 전문성이라고 생각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인터뷰로 확인하고 학습시켰다.
그리고 전문가처럼 생각하고 일하지만, AI가 모든 결정을 대신하게 만들지 않는다. AI가 조사하고, 기준에 따라 판단해서 보고하고, 사람은 그 결과를 보고 방향을 고친다. 피드백루프를 만든 것이다. 점점 고도화되는 제품을 설계했다.
앱부터 만들지 않았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나서야, 어떻게 만들지 생각했다.
전용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었다. 별도 API를 연결하고, 서버를 만들고, 데이터베이스를 두고, 예약 실행을 붙일 수도 있었다. 일반적인 제품이라면 자연스러운 순서다.
그런데 이 실험에는 이미 쓸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 사용자의 노트북이 있었고, 구독해서 쓰는 Codex와 Claude가 있었다. 별도 서버도, LLM API 키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조건에서 가장 작은 제품을 골랐다. 못 만들어서가 아니다.
지금 사용자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화면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매일 아침 열어볼 수 있는 조사 결과였기 때문이다.
화면도 같은 기준으로 정했다. 처음 만든 화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기능 부족이 아니었다. 기존에 보던 엑셀 조사표와 달랐다. 상품조사는 한 상품과 다른 상품을 비교하는 일이다. 그래서 카드형 화면이나 멋진 에디토리얼 리포트 대신, 한 상품을 한 행에 놓고 기존 항목을 열로 유지했다. 화면을 바꿔서 제품을 배우게 하지 않고, 이미 하던 일을 더 빨리 하게 하는 쪽을 골랐다.
다만 엑셀을 그대로 복제하지는 않았다. 가로로 끝없이 밀어야 하는 화면은 줄이고, 필요한 정보는 행을 열어 확인하게 했다. 이미지가 없으면 빈칸으로 두지 않았다. 실제 이미지 파일을 저장하고, 상품 원문까지 따라갈 수 있게 했다.
사용성은 유지하지만 편의를 더했을 뿐. 그렇게 시작하는게 유저의 랜딩 시간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야 거부감 없이 새로운 툴에 바로 뛰어들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도 두지 않았다. 이 일에 필요한 건 조회가 아니라 누적이었다. 상품 하나를 한 줄씩 쌓고, 다음 조사 때 그 파일을 다시 읽으면 된다. 검색할 일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붙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폴더에 상품 데이터를 쌓ㄹ았다. 물론 기록이 계속 쌓이면 매번 전체를 읽는 방식은 언젠가 무거워진다. 그때는 다시 볼 문제다.
그래서 이 서비스는 무슨 일을 하나
사용자는 프로젝트 폴더에서 Codex나 Claude를 열고 말한다.
"오늘 신상품 중 개발에 참고할 변화만 조사해줘."이게 너무 길다면 "리서치해"라고만 말해도된다.
그러면 에이전트가 현재 판단 기준과 과거에 쌓인 상품과 이전 피드백을 먼저 읽는다. 최신 웹을 찾아 상품을 고르고, 상세페이지의 원문과 이미지와 출처를 모은다. 그 내용을 기존에 보던 조사표 모양의 HTML로 만든다.
리포트에는 상품 정보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상품이 어떤 변화에 해당하는지, 왜 볼 가치가 있는지, 무엇이 확인되지 않았는지도 함께 나온다. 이미지가 없거나 직접 확인할 출처가 없으면 그럴듯하게 채우지 않고 멈춘다.사람은 후보를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지 않는다. 리포트를 읽고 "이건 다음에도 찾아봐", "이 판단은 달라"라고 말한다. 그 피드백은 다음 조사에서 다시 쓰인다. 한 번 조사하고 버리는 챗봇이 아니라, 조사할수록 기준과 기록이 쌓이는 업무 도구다.
나는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외주를 받으면 보통 요청받은 기능을 구현하고 납품하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외주를 한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유사한 형태니 비교를 해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의뢰받은 말을 그대로 기능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한 시간 동안 실제 일을 듣고, 그 안에서 반복 업무와 전문 판단을 나눈다. 사용자가 무엇을 새로 배워야 하는지 줄인다. 만들 수 있는 것과 지금 필요한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제품으로 실제 사용 장면을 먼저 만든다.
이번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는 AI가 상품을 조사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매일 아침 반복되던 일을 어디까지 넘길 수 있는지, 어디부터는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지, 그 경계를 제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저가 가장 큰 효용을 얻는 제품이 무엇인지 먼저 판단하고, 그 제품에 필요한 만큼만 만들고 싶다. 그리고 유저가 처음보는 방식이더라도 거부감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 + 설명을 함께 성심성의껏 해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I를 도입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처음 필요한 건 앱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같이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