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콘텐츠 중에 너무 흥미로운 게 있어서 의견을 좀 적어보고 싶었다.
나영석 PD가 후배 PD들과 대결하는 콘텐츠다. 26년차 나영석과 연출 경력 0년차, 1년차 막내 PD들이 계급장 떼고 붙는다. 같은 게스트, 같은 조건으로 각자 콘텐츠를 만들어서 승부를 가린다. 사실 이건 광고 콘텐츠다. 심지어 AI광고. 광고라 더 재밌었다.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 콘텐츠를 기획한 에그이즈커밍에 대한 놀라움이다. 그리고 이 판을 흔쾌히 수락한 나영석 PD에 대한 놀라움이다.
두 번째는 AI다. 콘텐츠 회사에서 AI를 이렇게 쓸 수 있구나. AI가 실제 업무에 어디까지 들어와 있는지가 인상 깊었다.
기획자 누구냐 진짜
기획자 누구냐 진짜, 천재인가. 이런 댓글이 있었다. 동의 한다.
먼저 큰 틀부터 보자. 기획자가 너무 똑똑했다.
나영석은 이미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예능판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런 사람과 입사 1, 2년차 PD가 대결하는 기획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훅이 된다. 근데 훅보다 취지가 더 좋다.
신입은 신입대로 바라만 보기도 어려운 존재와 직접 무언가를 해볼 기회를 얻는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다르게 성장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재를 키우는 일이고, 다른 인재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된다.
나영석 PD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직접 마주하고, 위기감을 느낀다. 세대 융합에 가깝다.
이런 기획이 나오고, 실제로 추진되는 회사. 같은 직장인으로서 인상이 좋았다. 건강한 문화를 가진 회사구나 싶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리더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럼 이제 프레임 안을 들여다보자.
광고인데 광고 같지 않다
놀라운 건 이게 광고이다. 제미나이(AI)
신입 PD가 나영석과 피지컬로 붙기엔 무리다. 그래서 AI를 쓴다. 리서치부터 기획, 연출까지 다양한 방면에 활용해서 자기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나영석은 원래 일하던 대로 한다. 종이와 펜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온다.
광고 메시지가 대결 구도 안에 그대로 녹아 있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게 있다. 나는 주로 IT업계에서 코드 베이스로 AI 쓰는 걸 본다. 그런데 이건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이 기획에 AI를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눈앞에서 보여준다. 유저들이 이렇게 쓰는구나. 그게 너무 흥미로웠다.
1회차, 카리나
첫 번째 대결의 게스트는 카리나였다. 막내 PD는 01년생 천지인 PD.
천지인 PD는 카리나가 출연했던 유튜브 콘텐츠 링크를 제미나이에 넣고 특징을 정리해달라고 했다. 카리나가 꽃보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2000년대 초반 예능 포맷을 딥리서치로 분석시켰다. 브이로그를 훑어서 지금 도로주행을 연습 중이라는 것까지 뽑아냈다. 피칭용 이미지와 PPT도 제미나이로 만들었다.
그 결과로 나온 기획이 맷갈라다. 멧갈라 패러디인데, 카리나가 여름 별미로 콩국수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찾아서 맷돌로 콩을 갈게 하는 기획이었다. 옥상에 평상을 놓고 포토월을 세웠다. 세팅 사진을 찍어 제미나이에 넣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나영석은 다르게 접근했다.
카리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어본 게 이런 것들이다. 촬영 전후 일정이 뭐냐. 피로도가 어느 정도냐. 보통 점심은 뭘 먹냐. 그때 제일 큰 고민이 뭐였냐.
지인이는 이런 질문을 안 했나. 제미나이가 안 가르쳐줬나 봐. 무엇에 가장 스트레스받고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는가. 이것이 인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거다. 나영석이 만든 기획의 제목은 이거였다. 현실에서 카리나인 내가 이 세계에선 21살 지민이야.
예전에 에스파 녹화를 할 때 카리나가 흘린 말이 있었다. 자기들이 어느 나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스물한 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나영석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리나를 그 시절로 잠깐 돌려보내는 기획을 짰다.
심지어 막내 PD 콘텐츠를 위해 대표님이 등판한다.
2회차, AI를 어떻게 썼나
두 번째 게스트는 박명수와 정준하였다. 막내 PD는 2년차 유회정 PD, 첫 연출작이었다. 여기서 AI 활용이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세 단계였다.
첫 번째는 리서치다. 딥리서치로 박명수와 정준하의 케미,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훑는다. 20년치 아카이브를 사람이 다 볼 수는 없다.
두 번째는 수집한 데이터를 분류해서 콘텐츠에 녹이는 단계다. 영상을 넣고 서로 공격하는 말을 뽑는다. 누가 누구를 공격했는지 구분까지 시킨다. 기사도 검색시킨다. 그렇게 모인 것들 중에서 쓸 만한 걸 셀렉팅한다. 여기서 서로의 악플을 읽어주는 기획이 나온다.
세 번째는 연출이다. 처음 잡은 법정 컨셉이 출연자 의도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뒤, 현장 상황을 이미지로 찍어 넣고 고민을 설명하면서 AI에게 물어본다. 자기 맥락을 최대한 채워서 던지는 거다. 그렇게 받은 답변이 실제 세트로 구현된다. 법정 세트 대신 흰 배경에 조명이었다.
AI 회사가 아니라서 더 흥미롭다
그런데 이건 예능 제작사다. 종이와 펜으로 26년을 해온 사람이 있는 조직이다. 창의성이 핵심 자산이고, AI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이라는 편견이 있다.
에그는 반대로 했다. 실제로 업무에 적용했고 그걸로 아웃풋을 만들었다.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 = 존중
나영석은 이 대결에 임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했다. 제미나이를 젊은 지인이가 기획에 어떻게 쓰는지 보고 싶다. 그리고 지인이는 우리 회사의 미래니까, 이 친구가 핫한 출연자와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보고 싶다.
후배를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 회사의 미래라고 불렀다. 지인이가 하고 싶은 거를 아낌없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좋은 출연자를 섭외하는 게 PD 생활을 하면서 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누가 이기냐 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AI의 도움을 받아서 인류가 더 나은 퀄리티의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건 앞으로 100% 확정된 미래라고 본다. 우리 회사의 가장 젊은 피가 가장 최신의 문물을 사용해서 일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가, 이기고 지는 것보다 훨씬 더 궁금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tFaHkZO587c하지만 나영석 PD는 이렇게 말했지만 진지하게 기획하고 진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이걸 재미없게 생각하면 어쩌지, 어릴 때 들었던 긴장감이 진짜 오랜만에 몰려와서 당황했다고 했다. 촬영 전날엔 4시에 깨고 5시에 깨고 6시에 깨고 7시에 깼다. 이렇게 진심이라니 이 모습이 더 감동이었다.
2회차 때는 더 심했다. 원래 기획은 삼시세끼 스타일이었다. 조용히 음식 만들고 대화하는 거. 그런데 전날 밤 후배가 와서 막내 PD 거 봤는데 대박이라고, 긴장하셔야 된다고 한마디 하니까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밤에 기획을 갈아엎었다. 추격전으로 갔다.
이번에 가장 중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는 회정이 이기는 거라고 답했다. 25년 커리어가 여기서 무너지는 건가, 지인이한테 지면 어떡하지. 이런 말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pupt7s4zqE
계급장 뗄 수 있는 용기
보통 그런 자리에 선 선배들은 여유 있는 척하면서 살살 한다. 나영석PD는 진심으로 후배를 대했고
후배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지켰다. 살살 해주는 건 배려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시하는 태도일 수 있다. 너 정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니까.
이 콘텐츠를 보면서 든 생각이 두 가지다.
하나는 AI가 정말 사람들 생활 속에 많이 들어왔구나 하는 것.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시도하려는 노력이 앞으로 더 있겠구나 하는 확신. AI의 미래에 한 번 베팅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많이 알고 다양하게 많이 써보고 싶어졌다.
두 번째는 나영석 PD에 대한 리스펙이다.
내가 나영석 PD였으면 절대 수락 안 했을 것 같다. 일단 신입 PD랑 뭔가를 한다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내가 이 경지에 있는데. 심지어 그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면더 그렇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을 거다. 나도 있다. 새로 들어온 주니어들이 일하는 걸 보면 불안하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불안일 것이다. 나보다 더 잘할 거라고 항상 생각한다. 나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더 쪼고 있다.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그런데 연차도 있고 쌓아온 것도 있는 상황에서, 그게 남들 앞에서 무참히 밟힐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절대 못 할 것 같다. 나라면 적절한 팀장급 친구를 붙였을 것이다. 시니어 PD와 붙게 하고 나는 뒤로 물러나 있었을 거다. 직접 할 생각은 못 했을 것 같다. 그래서 저 태도에 다시 한 번 리스펙하게 됐다.
그리고 좋은 시니어는 좋은 인재를 양성한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에그이즈 커밍에 재직하지 않아 사내 문화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영상에서 보는 모습으로는 막내 PD의 콘텐츠를 위해 대표까지 등장하는 모습.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으로 보였다. 이런 조직문화가 많은 곳에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그런 문화를 만드는데에 일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사회생활을 시작해버린 나로서는 좋은 시니어가 될 준비가 되는것. 그 태도를 계속 잊지 않는것 이라는 미션을 스스로 생각하게 하였다.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시니어라는 상황때,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영석PD의 용기, 존중의 자세 열린 마음을 가진 모습으로 후배들을 위한 기회, 성장을 돕는 모습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