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채용 도움 드리는 걸 안 했다. 바빴고, AI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주말에 오랜만에 이력서 컨설팅을 했다. 하다 보니 내가 예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
예전에는 하나씩 다 봤다. 이건 이렇게 고쳐라, 저건 저렇게 써라. 예시를 최대한 자세히 주는 걸 고민했다. 지금은 원리를 주려고 한다. 수학으로 치면 예전엔 문제집을 풀어주는 쪽이었고, 지금은 개념원리를 같이 읽는 쪽이다. 문제 하나를 풀어주면 그 문제만 풀 수 있다. 개념을 알면 다음 문제는 혼자 푼다. 그래서 오늘은 이력서와 면접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단 하나의 원리(메세지)만 전달하려 한다.
모든 것의 기준은 상대다
구직은 나를 파는 일이 아니다. 상대를 아는 일이다.
순서는 셋이다. 상대를 파악한다. 나를 안다. 상대에 맞게 전달한다. 그런데 이 셋의 기준점이 전부 상대다.
특히 나를 안다가 그렇다. 대부분은 나를 잘 표현하려고 나를 판다. 내가 뭘 했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최대한 담는다. 하지만 상대가 뭘 원하는지 모르면 내 안에서 뭘 꺼낼지도 정할 수 없다. 나를 아는 건 다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상대 기준으로 골라내려고 아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입니다. 가 아니라
누구 찾고 계시죠? 그게 바로 저에요. 라는 관점으로 바꿔본다.
나는 재료다. 뭘 꺼낼지는 상대가 정한다. 그래서 이건 자기소개가 아니다. 매칭이다.
편지 = 이력서
상대를 파악한다고 하면 차갑게 들린다. 재직자를 만나고, 회사를 뜯어보고, 서류 통과 기준을 살피는 일. 리서치라고 부를 수도 있다. 나는 이걸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는 회사다. 나를 뽑는 사람, 내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 내 면접에 들어온 사람이다. 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보고, 자세히 살펴본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본다. 이력서는 다수에게 뿌리는 게 아니다. 그 사람에게 쓰는 편지다.
한 서비스를 오래 지켜본 적이 있다.
아주 초기부터 봤다. 아직 아무도 모를 때부터 썼고, 연예인을 모델로 쓰기 시작하던 순간을 봤고, 큰 투자를 받고 규모가 달라지는 것도 봤다. 그 궤적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 회사에 지원할 때, 나는 지원 동기에서 이 말을 했다. 당신들이 여기까지 온 길을 나는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고. 어느 시점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게 왜 대단했는지.
그건 지어낸 지원 동기가 아니었다. 오래 좋아한 사람에게 "나는 당신의 이런 순간들을 다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에 가까웠다.
회사는 러브레터를 너무 많이 받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러브레터를 너무 많이 받는다. 그래서 애정만으로는 안 된다. 내 편지가 더 잘 보이게, 그 사람에게 꽂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애정이 있어야 오히려 냉정하게 버릴 수 있다. 이 사람이 이걸 다 못 읽는다는 걸 아니까, 뭘 남기고 뭘 뺄지 정할 수 있다.
마음은 예측이 될 때 움직인다
불확실성 감소 이론이라는 게 있다. (1975년에 나온 오래된 커뮤니케이션 이론) 요지는 이렇다. 사람은 상대가 낯설 때 불확실함을 느끼고, 그 불확실함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상대가 예측 가능해질수록 마음을 연다. 예측이 되면 호감이 오른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A도 두 개, B도 두 개, C도 잘하고 D도 잘한다. 정보는 많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려지지 않는다. 예측이 안 된다. 그러면 마음을 줄 수가 없다.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다. 예측 가능성이다.
그래서 하나의 메시지만 전해도 괜찮다. 오히려 그래야 한다. 하나가 선명하면 상대는 나를 예측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겠구나. 이 일을 이렇게 하겠구나. 애초에 채용은 다 잘하는 플레이어를 뽑는 게 아니다. 그 일을 할 그 사람을 뽑는 거다. 그러니 "나는 다 잘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 일을 하는 사람이다"가 꽂힌다.
이렇게 말하면 불안해진다. 이거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버리면, 저 좋은 것들은 안 보이는 거 아닌가. 나를 덜 보여주는 거 아닌가. 그런데 불안해하면 안 된다. 버리는 게 아니라 고르는 거다. 하나가 선명하게 꽂힌 사람은 나머지를 궁금해한다. 면접에서 물어본다. 나머지는 그때 꺼내면 된다. 처음부터 다 펼쳐놓으면 아무것도 기억되지 않는다. (명심)
30초, 그리고 1시간
컨설팅을 하다 보면 흔한 경우가 있다.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해온 프로젝트가 많으니 하나로 못 좁힌다. 메인 메시지를 잡아도 그 아래 이야기들이 메인에서 나오지 않고 자꾸 다른 주제로 흐른다. 마음은 안다. 다 아까우니까.
하지만 이력서를 보는 시간은 1분이다. 사실 30초다. 면접은 1시간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 관점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이 사람은 어디까지 보겠네. 어떤 단어를 보겠네. 뭘 물어보겠네. 이 정도에서 끝나겠네. 뭐가 중요하겠네. 뭘 버려야겠네. 그러면 답이 나온다. 하나의 메시지로 압축한다. 나머지는 버린다.
문장도 바뀐다. "파악합니다"로 끝내지 않는다. "성과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로 끝낸다. 파악은 과정이고 성과는 결과다. 상대가 궁금한 건 결과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뭘 만들었는지가 코어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 관점이 '나'에서 '너'로 바뀐다.
구직 = 유저 경험 설계하기
여기까지 오면 이건 내가 PM으로 프로덕트를 만들며 유저를 만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알게된다. 유저를 리서치하고, 그 유저의 경험을 설계하는 것. 유저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뭘 보여줄지 정해진다. 유저의 시간은 짧으니 핵심만 남긴다. 채용도 똑같다. 상대를 알고, 상대의 30초와 1시간을 설계한다.
원리는 하나다.
모든 것의 기준은 상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