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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PM으로 살아남기 4편 : 미국은 다르다.

셩PM · 2026-07-03
미국은 하나의 정의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프로덕트를 만들어 왔으니, 시장을 하나로 보는 게 습관이 됐다.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대체로 서울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중심이 있고, 거기서 바깥으로 퍼진다. 언어도 하나, 법도 하나, 결제도 하나. 너무 당연해서 의심한 적이 없었다. 미국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그게 깨졌다.


일단, 크다

미국은 크다. 인구가 3억 4천만이 넘는다. 한국의 여섯 배가 넘는 사람이 산다. 게다가 한 사람이 더 많이 쓴다. 1인당 GDP가 8만 달러를 넘어, 3만 달러대인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사람이 여섯 배 많고 한 명이 두 배 넘게 버니, 소비 시장의 크기는 곱해 보면 나온다.


중심도 하나가 아니다. 금융의 뉴욕, 미디어의 로스앤젤레스, 기술의 샌프란시스코, 에너지의 텍사스. 저마다 색이 다른 중심이 여러 곳에 있다. 캘리포니아 한 주의 경제 규모만 세계 4위권으로, 한국 전체의 두 배가 넘는다. 하나의 도메인 안에 우리나라 전체 시장만 한 덩어리가 몇 개씩 들어 있다. 기회의 땅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리고 빠르다

크기만 다른 게 아니다. 속도가 다르다. 내가 한국에서 붙잡고 있던 문제를, 여기서는 여러 팀이 동시에 풀고 있었다. 그것도 훨씬 빠르게. Ditto는 앱도 피드도 없이 아이메시지로만 매주 한 명씩 소개해 주고, Known은 사진도 스와이프도 없이 목소리 대화만으로 사람을 연결한다. 하나를 조사하다 보면 그새 비슷한 서비스가 또 나와 있었다. 같은 방식이 데이팅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채용에는 Jack과 Jill이라는 두 에이전트가 지원자와 회사를 각각 대리해 붙여 주고, 부동산에도 집을 대신 찾아 주는 에이전트가 나온다. 도메인을 옮겨 다니며 같은 패턴이 번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시작한 팀만도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자리 잡은 회사들도 다음 시장으로 미국을 고른다. 결국 다들 여기로 몰린다. 만드는 사람들도 인상적이었다. 어리고, 똑똑하고, 공격적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뛰어든 창업자, 최고 연구실 출신들이 한 팀에 모여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태도로 움직였다. 정글이고 전쟁터다. 그런데 매력적이었다. 빠르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만한 밀도로 몰려 있는 시장을, 조사하는 내내 나는 심장이 뛰었다. 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보고 싶었다.


주마다 다른 나라다

미국은 지역마다 다른 나라다. 분위기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다. 그리고 법이 다르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 미국엔 전국에 하나로 적용되는 개인정보 법이 없다. 주마다 각자의 법이 있고, 지금은 스무 개 가까운 주가 서로 다른 기준을 두고 있다. 어떤 곳은 사용자가 직접 "내 정보 팔지 마"라고 꺼야 막히고, 어떤 곳은 회사가 먼저 물어봐야 한다. 응답 기한도, 적용 대상도 주마다 다르다. 그래서 한 주를 위해 만든 화면을 옆 주에서는 다시 손봐야 한다. 법이 다르다는 게 진짜 다른 부분이었다.


사람도 하나가 아니다

여러 나라인 건 땅만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인종이 다양하고 정체성이 다양하다. 성 정체성이 있고, 종교가 있고, 그 안에서 또 갈린다. 미국은 인구의 15%가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한국은 3%대다. 여행으로 유럽을 다닐 때도 '다르구나'는 봤다. 하지만 그건 표면이었다. 제품을 직접 기획하면서는 달랐다. 다양성이 구경거리가 아니라 변수가 됐다. 사용자가 갈리면 화면의 요소 하나하나가 다르게 움직였다.


그래서 제품의 모양이 달라진다

사용자가 갈라지니 제품도 달라진다. 한국은 비교적 동질적인 시장이다. 넓게, 범용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통한다. 하나의 서비스가 최대한 많은 사람을 담으려 한다. 미국은 시장이 잘게 나뉜다. 그러니 한 곳만 좁게 파고들어도 된다. 게다가 인구가 크니까, 그 좁은 시장 하나도 한국 전체만 한 규모가 나온다. 그래서 작은 회사일수록 더 뾰족하다.


우리가 MVP라 부르는 것보다 훨씬 좁고 날카롭게 한 점을 찌른다. 대신 한국이 앞서는 것도 있다. 한국은 인구 밀도가 미국의 열 배가 넘는다. 좁은 땅에 사람이 몰려 사는 덕분에, 오늘 시킨 물건이 내일 아침 문 앞에 온다. 그 밀도 위에서 제품은 더 촘촘하게, 더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진다. 미국이 뾰족함으로 승부한다면, 한국은 완성도로 승부해서 성공하는 경우의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예전에 어떤 VC분의 글을 봤다. 한국에서 자리 잡은 서비스를 미국에 다시 기만 하면 된다고, 그걸 '확장'이라 여기는 팀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했다. 미국에선 PMF를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고. 그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시장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 말은, 미국이 하나의 시장이 아니라 그냥 다른 나라라는 뜻이었다. 기회의 땅이라는 말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