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냐 · 주간 콘텐츠

일도 운동도 속도를 줄였다.

셩PM · 2026-07-01
멈추지 않고, 속도만 줄였다

원래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두통으로 먼저 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눈앞이 한 번씩 뿌옇게 보였다. 턱에 힘을 너무 준 탓에 어떤 날은 아침에 입이 잘 안 벌어졌다. 입 안에도 이런저런 증상이 올라왔다. 오래 눌러온 게 최근 강도가 확 올라가면서, 몸 여기저기가 신호를 보냈다. 병원을 다녔다. 정신과에서는 스트레스를 물리적으로 낮추는 약을 처방받았다. 한의원도 갔다. 두 곳에서 같은 말을 했다. 운동하지 마세요. 몸을 더 사용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했다. 처방은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거였다.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충분히 자고 쉬었다. 재택으로 일하며 해야할것 이외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운동도 한 달을 놓았다. (대신 걸을 수 있는 날들이 있으면 걷기 정도는 했다) 대단한 걸 한 게 아니다. 그냥 쉬었다. 쉬다 보니 생각이 더 멀리까지 갔다. 다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한참 뒤에야 그 후련함의 정체를 알았다. 미련이 없어서였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더 할 수 있었는데, 하고. 그런데 그런 마음이 안 들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다음이 기대됐다. 그때 알았다. 미련이 없다는 건, 내가 뭔가를 쌓아뒀다는 것이였다. 다 놓으려고 마음먹은 자리에서, 오히려 뭐가 남는지가 보였다. 나에게 일이 뭔지, 내가 뭘 지키고 싶은지.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면 못 봤을 것들이었다.


한 달을 쉬니 몸은 나아졌다. 대신 대가가 있었다. 4kg. 몸무게가 확 는 건 아닌데 체지방 위주로 붙었다. 건강한 에너지가 도는 것도 아닌 몸. 임신하고 1년을 못 움직이다 다시 시작할 때의 그 감각과 비슷했다. 살찐 느낌은 확실히 불편했다. 이전, 임신 후 복귀를 서둘렀다. 불안했다. 내가 아는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이 쉬면 사라질거라 생각했고 몸도 모든게 예전같지 않을 거라는 것에서 기인했던 불안감이었다.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쌓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이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출산하고, 다이어트하고, 그때마다 나는 마이너스에서 다시 시작했다. 근육이 다 빠진 자리에서, 무거워진 몸으로. 그런데 다시 하면 몸은 돌아왔다. 한 번 만들어본 몸은 처음보다 빨리 돌아온다.

일도 다르지 않았다. 일을 제대로 해보려고 공부하고 쓰고 붙들던 것들이, 그 일의 틀을 벗어나서도 나에게 남았다. 무엇을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록했던 것들, 밤마다 시간을 쓰면서 고민했던 것들 그게 눈앞에 쌓여있었다. 그래서 다 내려놓으려 했을 때도 후련할 수 있었다. 지금 놓는게 모든걸 놓는게 아니라 지금의 순간의 휴식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한 달 만에 운동을 갔다. 천국의 계단을 27분 했다. 몸은 4kg 더 무거운데, 끝나고 나서는 더 가벼웠다. 목표했던 30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내일도 할 것이니까 미련없이 내려왔다. 가장 어려운건 헬스장에가서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 막상 하는 동안은 적당히 힘들었다. 꽤 괜찮았다. 마음먹기가 가장 어려운데 그걸 해냈다! 라는 효용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전에 운동을 쉬고 다시했던 경험들이 쌓여서 이번엔 이전보다 더 쉬웠던 것 같다.


복귀는 0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늘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 쉰 만큼의 대가를 안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건, 그 마이너스가 진짜 0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에서는 근육이 남았고, 일에서는 미련 없이 놓을 수 있을 만큼 쌓은 것이 남아서 어떻게 써야하는지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엔진의 출력을 살짝 높여본다. 이번에 정리한 나만의 기준으로 내 가치관에 맞는 방향으로 남들이 보는 시선의 길이 아니라 내 길을 가보려한다. 급하지 않게 이전보다 조금 더 무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