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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중간 점검 1편 : 내 일을 무엇이라 정의하는가

셩PM · 2026-06-15
노희영 고문님의 영상을 내 커리어 들여다보기

얼마 전 노희영님이 마케터 지망생들을 모의면접하는 영상을 봤다. 합격자를 가려내는 자리가 아니라, 지원자한 명 한 명에게 진짜 피드백을 돌려주는 자리였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JgWKLyYnc-o&t=836s


영상에서 세가지의 포인트에 고개를 끄덕였다.

첫번째, 자기 일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은 나는 무엇이라고 정의내리는 지, 그 안에서 나는 어떤것을 하는 사람인지의 정의를 가지는 것의 중요성.

두번째, 그 정의가 표면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일명 '깊이'라고 부른 영역이다. 이 브랜드 잘한다 정도의 관찰은 누구나 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왜를 끝까지 물어야 비로소 깊이가 생긴다. 노희영님은 베이글 하나를 두고 이렇게 물었다. 사람들이 왜 이 베이글에 열광할까. 잘 팔린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말고, 그 사실을 만들어낸 이유까지 내려가라는 거였다. 그 왜를 파고드는 깊이에서 정의도 나온다.

마지막, 그 정의 위에서 내가 어떤 커리어 여정을 가고 싶은지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내 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정해지면,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까지 그 정의가 그려준다. 거꾸로 정의가 없으면 여정도 흐릿할 수밖에 없다. 첫번째와 이어지는 말이다.

이 관점에 맞춰 내 일을 한번 정의해봤다.


나는 맡은 일을 성공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지금 내 직함은 PM이다. 그런데 나는 내 일을 'PM'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역할의 경계나 직급에 큰 욕심이 없다. 이건 기획 일이고 저건 내 일이 아니라는 구분, 직급이 얼마나 올라가느냐 하는 것에 마음이 잘 안 간다. 필요하면 기획이든 PM이든 그 역할 밖으로 나가도 상관없다.

대신 내 일에서 제일 중요한건 이거다. 나는 맡은 일을 성공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맡은 일이 무엇이든, 어떤 모양이든. 그걸 성공까지 끌고 가는 것. 거기에 내가 어떤 직함을 달고 있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야하는 에너지의 정도의 한계도 크게 없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서 쓰러질 수는 있지만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에너지에 큰 제약은 없다. 그 성취가 즐거운것도 한몫한다.


'성공'이 무엇인지가 전부다

그러면 '성공'이 뭐냐. 여기서 사람마다 갈린다. 누군가에겐 직급이 오르면 성공이다. 누군가에겐 제품이 출시되면 성공이다. 난 둘 다 아니다.

내가 보는 성공은 이어진 하나의 흐름이다. 내가 한 일이 시장에서 진짜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로 유저의 경험이 실제로 바뀌고, 그렇게 바뀐 경험이 결국 회사와 팀을 그만큼 키우는 것. 거기까지 가야 나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직급도 연봉도 그 흐름의 끝에 따라오는 결과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깔끔한 기획서도, 아무리 매끄럽게 끝난 회의도, 시장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 방식들이 시장에서 더 잘 작동시키기 위함이라면 완전한 커밋을 할 수 있다.


좁은 정의가 더 명확해진다.

여기서 좁은 건 '맡은 일'이 아니라 '성공'을 보는 눈이다.

나는 어떤 일이든 맡아도 된다, 역할도 가릴 생각도 없다. 대신 그 일을 성공이라 부르는 기준은 아주 낮지 않다. 솔직히 높은것 같다.

시장에서 가치를 만들었는가

유저의 경험을 바꿨는가(positive)

그래서 회사, 팀을 성장시켰는가 (규모의 성장 개인의 성장 모두 포함)

이 셋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에게는 아직 성공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영향력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같은 건 나에겐 뾰족하지 않다. 교사에게도, 정치인에게도, 인플루언서에게도 다 사용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맞는 말은 결국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골라주지 못한다.


근데 이 좁은 성공 기준은 골라준다. 어떤 회사, 어떤 자리를 앞에 두고도 나는 하나만 본다. 여기서 내가 맡은 일을 이 기준의 성공까지 끌고 갈 수 있나. 맞지 않으면 조건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거른다. 기준 한 줄이 생기고 나서, 결정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리고 내 자리, 내 방향이 맞는것인지 아닌것인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데에는 크게 혼란스럽지 않다. 즉 내가 맞나? 라는 의심을 크게 안하게 되었다.


그러면 취준의 의미가 바뀐다

이 한 줄이 자리를 잡으면, 신기하게도 취준이 한결 가벼워진다. 정확히는, 면접이라는 자리의 의미 자체가 달라진다.

예전에 면접은 평가받는 자리였다. 오늘 내가 잘 봤는지 못 봤는지, 합격인지 불합격인지가 전부였다. 면접관의 표정 하나에 마음이 오르내렸다.

지금은 다르다. 면접이 내가 판단하는 자리가 된다. 여기가 나와 맞는 곳인가. 내가 속하고 싶은 곳인가. 무엇보다, 여기서 내가 맡은 일을 성공으로 만들 수 있는가. 같은 자리인데, 붙고 떨어지는 게 전부였던 곳이 서로 맞는지 확인하는 곳으로 바뀐다. (물론 직업을 가져야한다는 목적하에서는 판단 되어야하는 것도 중요하다)


커리어를 보는 눈도 같이 바뀐다. 좋아 보이는 자리를 좇아 휩쓸리는 대신, 내 정의에 맞는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기준들이 생기고 계속해서 판단해볼 수 있다. 내 커리어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매번 그 한 줄에 비춰 점검하려 한다. 그러면 커리어가, 또 회사가 깔아준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내 길이 된다.


솔직히, 좀 필사적이다

솔직히 이 집요함이 순수한 열정만은 아니다.

나는 커리어를 한 번 틀었고(디자이너였음), 그래서 일한 연차에 비해 PM 연차는 길지 않다.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의 간판도 내겐 없다. 물론 이전 서비스를 만든 경험은 정말 큰 자부심이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의 내 타이틀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늘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지금 쌓은 걸 앞으로도 유지하려면 계속 잘 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 성공으로 만든다에는 약간의 필사적임이 섞여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치열하게 왜를 묻고 본질을 파려고 한다. 표면에서 멈추지 않는 게 결국 일을 더 잘하고 결과를 좋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절박함이 나를 자꾸 깊이를 만드는 고민을 하게 한다(아직은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의를 잡고 달라진 게 있다. 불안은 여전한데, 방향을 가진 불안이 됐다. 그리고 어느정도로 목표에 나아가고 있는지 측정하게 한 것이다.


아직 다 못 푼 질문들

물론 여기까지가 내가 답한 전부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직 정리 중인 질문들이 남아 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맡은 일을 성공으로 만들고 싶어 할까. 어디까지 가고 싶은 걸까.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을 맡아 성공으로 만들고 싶은 걸까.

이런 질문은 한 번 답하고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다. 일을 해나가면서 계속 다시 묻고, 답을 고쳐 쓰게 된다. 그래도 정의 한 줄을 먼저 잡아두니, 나머지 질문들이 더 이상 막연하지 않다. 전부 그 한 줄에 매달려 있어서, 어디서부터 생각하면 되는지가 보인다.


당신의 한 줄은 무엇인가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가.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직장동료에게도 물어봤다. 너의 일은 너는 뭐라고 생각해? 특히 커리어 상담을 오시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단순히 하는 일 말고. 이력서에 적는 직무 설명 말고. 진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일의 정의말이다.


그 한 줄이 잡히면, 왜 일하는지도 앞으로 무엇을 할지도 그 줄에서 풀려나오기 시작한다. 신기할 만큼 많은 것이 거기서부터 정리된다.

아직 그런 한 줄이 없다면, 오늘은 그 질문 하나만 품고 가도 충분하다. 그리고 계속 고민해보는것 그게 시작이다. 하지만 이 한줄이 있다면 하루에 깨어있는 절반에 해당하는 일하는 시간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