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냐 · 주간 콘텐츠

「먼 훗날 우리」「만약에 우리」를 커리어 시선에서

셩PM · 2026-06-09

요즘 마음에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시선을 다른 곳에 두려고 애써봤더니, 그동안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미뤄둔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두 시간이 꼭 아웃풋으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의 여유. 심지어 영화를 보면서도 10초 넘기기 버튼을 거의 누르지 않았다. 뒤로 넘겨 맥락만 빠르게 훑던 버릇을, 이번엔 일부러 참았다.

그렇게 두 편을 봤다. 「먼 훗날 우리」, 한국 리메이크 버전 「만약에 우리」같은 이야기다. 다들 이 영화를 보고 회상에 잠기거나 과거의 연인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영화를 커리어 밑에서 풀어보고 싶어졌다.

영화는 헤어진 연인이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자꾸 "만약에"를 꺼낸다.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끝까지 곁에 있었다면. 하지만 결과론 적으로는 현실에서 그 무엇도 바꿔놓지 못했다 그 질문들이.


여기서부터 커리어 얘기다.

회사에도, 팀에도, 성장 시기에 맞는 인연이 있다.

어떤 동료, 어떤 조직, 어떤 프로젝트는 특정 국면에서 서로에게 꼭 맞는다. 그 국면이 지나면 속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내가 팀의 속도를 못 따라간다. 또 어떤 날은 팀의 속도가 내 성장에 비해 너무 느리다. 그러면 개인은 팀을, 팀은 개인을 떠나보낸다. 적당한 시기에 놓아줘야 서로 또 자란다. 붙잡고 있으면 둘 다 멈춘다.


물론 이런 생각, 가치관이 직장 생활에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 조직은 굴러가야 하고, 속도가 달라도 함께 가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니까. 그렇게 가다보면 또 서로의 성장이 맞춰지는 지점이 오기도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다만 그건 조직의 입장에서다. 커리어는 조직의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것이다. 조직이 가리키는 답과 내 인생이 가리키는 답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날 나의 커리어에 대한 가치판단 순서는 이렇다. (내일이면 달라질 수 있다)

먼저, 내가 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서야 한다. 내 인생에서 일은 어떤 의미인지, 나는 내 일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지금 조직에서의 자리가 그 안에서 무슨 뜻인지.

누군가에겐 승진이, 더 좋은 자리가 목표일 수 있다.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존중한다. 다만 내 목표는 조금 다르고, 그래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도 달라진다. 나에게 그 기준은 오래 버티는 것 자체가 아니다. 솔직히 요즘은 내 커리어 여정에 대해 남들의 평가를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내가 떳떳하게 내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 시간에 자신이 있는가? 오늘은 이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배울 게 있는가.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며 실력이 느는가, 아니면 익숙한 일을 반복하며 시간만 흐르는가.

내가 쏟는 이 시간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드는가. 누군가의 문제를 실제로 풀어주는가, 아니면 조직 안에서만 보여지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인가. 닮고 싶은 사람, 배우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는가.

내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일 년 뒤의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까.

나는 그 기준이 서야 오늘날의 일들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고 흘러가는 하루가 아니라 선명하게 하루하루 이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랬을때 하루를 잘 살았다. 라고 생각이 들고 남의 돈을(?) 정당하게 벌었다라는 떳떳함도 찾아온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한테 자주 이 질문을 한다.

지금 시점, 우리는 함께할 인연인가.


그 어긋남이 분명해질 때, 사람에게 생기는 변화가 하나 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나는 날카로워지는 모습으로 그 변화가 나타나는 편이다. 그 날카로움은, 어쩌면 시기에 대한 신호이기도 하다. '적당한 때'가 가까웠다는 신호는 아닌가? 생각해볼법하다.


영화에서도 그랬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난 모습까지 보고 말았다. 그리고 서로를 떠났기에, 각자 다음을 도모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났을 때도, 둘은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으려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도 없었다. 만약에 라는 말로 지난날을 회상하고 아쉬워했지만 결국 지나간 일은 지나간 자리에 묻어두고, 각자 오늘의 현실로 돌아간다. 다만 안다.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서로가 있다는 걸.

속도가 어긋난 게 분명하다면, 적당한 때에 서로를 놓아주는 게 맞다. 다만 그렇게 보낸 시절까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 선택들의 총합이고, 그 선택마다 누군가 함께 있었다. 그중 다수는 지금의 결과에는 없다. 그래도 그 시절을, 정확히 그때 함께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나도 영화 속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이다.


커리어도 인생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오늘 내가 후회없이 진심으로 임했다는 것.

우리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그 안에서 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도 많이. 그래서 이 영화도 여러 시선으로 볼 수 있겠지만, 나는 커리어의 시선에서 풀어보고 싶었다.


내 커리어를 되짚어 봤을때 모든 순간이 참 다행이었다. 그때 그 시절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고 덕분에 성장했고 적당한 시점에 조직을 잘 떠났다. 덕분에 오늘날의 아주 소소하지만 뭔가를 할 수 있는 내가 된 것 같다. 누군가가 평가하기 이전에 앞으로의 내가 더 기대된다. 그게 참 맘에든다. 그 이유는 내가 정말 매 순간에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은 다 의미 있었다. 결과가 어떻든, 그 순간에 진심이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진심이었기 때문에 후회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할 일은 하나다. 이 순간에 충실한 것. 10년 후 오늘을 돌아봤을 때, 그때 나는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고 후회가 없다.고 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