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제일 관심 있는 도메인이 커리어다. 그중에서도 채용 시장. 사람과 일을 연결하는 이 시장이 여전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채용을 정통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돌아서 갔다. 오늘은 내가 왜 돌아갔는지부터 설명해보고싶다.
문제를 푸는 길은 크게 둘이다. direct path, 그리고 indirect path.
direct는 문제를 바로 때리는 거다. 채용을 풀 거면, 그냥 채용 서비스를 만든다. 정문으로 들어간다.
indirect는 돌아서 푸는 거다. 채용이라는 무거운 시장을 정면으로 안 건드리고, 그 옆에서 시작해 서서히 채용으로 옮겨간다. 대표적인 게 링크드인이다. 처음부터 채용 사이트가 아니었다. 프로페셔널들이 자기 이력을 올리고 서로 연결되는 네트워크였다. 사람이 모이고 데이터가 쌓이자, 그 위에 채용이 얹혔다. 퍼블리도 비슷하다. 커리어 콘텐츠 구독으로 시작해, 직장인 커뮤니티(커리어리)를 거쳐, 여러 해 만에 B2B 채용(위하이어)에 닿았다.
둘 다 도착지는 채용이다.
indirect가 영리해 보이는 이유가 있다. 정면은 무섭다. 채용은 이미 큰 선수들이 있고 진입 장벽이 높다.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는 전략적인 접근처럼 보이곤 한다. 옆에서 가볍게 시작해 사람부터 모으는 게 안전해 보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두 번째 길 위에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것들
커리어 코칭으로 시작해볼까.
이력서 진단부터 해볼까.
커리어 기록 대시보드는 어떨까.
채용 공고를 남들과 다르게 보여주면?
다 채용을 돌아서 건드리는 안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씩 깨졌다.
첫째. 이게 무슨 서비스인지 나조차 설명을 못 했다.
서비스를 소개하려는데 한 문장으로 안 떨어졌다. 커리어를 도와주는 건데, 코칭 같기도 하고, 기록 같기도 하고, 공고 추천 같기도 하고. 다 조금씩 걸쳐 있으니 하나로 정의가 안 됐다.
PM이라면 안다. 내 서비스를 한 문장으로 설명 못 하면, 유저는 절대 이해 못 한다. 만드는 내가 헷갈리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이해하고 나에게 필요한 서비스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돌아가는 길은 그래서 위험했다. 옆에서 시작할수록 "그래서 이게 뭐 하는 건데?"가 점점 흐려졌다.
둘째. 커리어는 목적이 없으면 안 들어오는 도메인이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도메인마다 도메인의 특성이 있다. 그래서 채용할때에 이전 도메인의 유사성을 가장 크게 보는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도메인을 이해하는 것 만큼 성공확률을 높이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커리어는 이미 하루 8시간 넘게 보내는 영역이다. 일하느라 종일 붙어 있는데, 퇴근하고 또 커리어 앱을 열고 싶을까. 게임이나 SNS처럼 재미로 자주 들여다보는 도메인이 아니다. 이직을 해야 할 때,분명한 목적이 생겼을 때만 비로소 그 귀찮은 문을 연다.
이건 사실 내가 예전부터 하던 얘기이기도 하다. 마찰을 아무리 줄여도, 동기가 없으면 사람은 시작 버튼을 안 누른다. "1일 5분이면 운동 끝"이라고 광고해도, 운동 안 하던 사람은 그 5분도 안 한다. 5분이 부담이라 안 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운동할 이유가 없는 거다.
커리어도 똑같았다. 코칭이든 기록이든, 입력을 아무리 쉽게 만들고 UI를 아무리 예쁘게 다듬어도 사람들은 안 들어왔다. 마찰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의 문제였으니까. 목적 없는 커리어 도구는, 마찰이 0이어도 안 쓴다.
셋째. 가장 큰 문제! 서비스의 페르소나가 나였다.
평상시에 유저들이 자주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근데 아니었다. 나만 그랬다.
나는 커리어를 취미처럼 즐기는 사람이다. 프로덕트 만드는 게 일이자 놀이고,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계속한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커리어를 자주 들여다볼 거라 믿었다. 페르소나를 나로 잡은 거다.
근데 나는 매니아틱한 유저였다. 그런 사람은 시장에서 소수다. 소수를 기준으로 만든 서비스는 소수까지밖에 못 간다. 최소한의 스케일을 만들려면, 나 말고 보통의 사람들이 언제 커리어를 열어보는지를 봐야 했다.
여기서 더 솔직해지자면 즐긴다던 나조차 순수한 재미만은 아니었다. 그 안엔 성취가 있었고, 효용이 있었다. 결국 나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즐기는 나마저 그런데, 보통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번엔 direct path로 간다. 그냥 채용이다.
돌아가기를 그만뒀다. 목적이 가장 분명한 그 지점, 채용을 정면으로 잡기로 했다.
그럼 채용을 어떻게 풀 거냐. 헤드헌터를 떠올렸다. 지금 구직자에겐 길이 둘이다. 하나는 잡사이트. 공고를 수백 개 쏟아낸다. 그중 나한테 맞는 게 뭔지는 내가 다 뒤져서 찾아야 한다. 검색은 결국 내 몫이다. 다른 하나는 헤드헌터. 정반대다. 내 얘기를 듣고, 수많은 자리 중 나한테 맞는 몇 개만 골라서 가져다준다. 회사가 괜찮은지도 대신 봐준다. 골라주는 게 그쪽 일이다.
문제는 헤드헌터가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시장에서 노출이 되어야하고(ex.링크드인 등) 연봉 기반의 수수료 BM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봉 높은 일부 포지션, 일부 사람만 그 서비스를 받는다.
그 헤드헌터의 일을 AI로 한다. 검색은 비효율적이고 큐레이션은 비싸다는 게 채용 시장의 진짜 pain인데, 그 큐레이션을 누구나 받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가볍게 시작하고 싶었다. 무거운 앱부터 만들 생각은 없었다. 가설부터 빠르게 검증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앱 없이 갔다. app-less. 이미 다들 쓰는 카카오톡에 에이전트를 붙였다. 친구 추가가 곧 에이전트를 붙였다. 굉장히 빠르고 쉽게
막연한 확신은 아니다. 해외에선 이미 이 방향으로 가는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다. dex, jack&jill 같은. 앱리스로 비즈니스를 잘 하는 모습도 쉽게볼 수 있다. 가다보면 또 이 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방향으로 가보려 한다.
돌아보면 이상하다. 내 서비스가 되는 순간 이상해진다.
채용을 할 거면 채용을 만들어라. 페르소나를 나 자신으로 잡지 마라. 남의 서비스였다면 나도 바로 했을 말이다. 실제로 남들 프로덕트를 분석할 땐 이런 게 다 보인다.
근데 내 것이 되는 순간, 그 당연한 판단이 안 된다. 빠르지도, 명확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6개월을 돌았다.
남이 만들 땐 당연한 게, 왜 내 프로덕트가 되면 안 보일까. 내가 직접 만들어낸 성공의 모습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오늘도 가설을 증명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