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또 왔다.
사실 예전엔 이렇게까지 자주 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잘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호가 오면 알아채고, 빠르게 털고 일어나고. 회복이 빠른 편이라 크게 겁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관리되고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반복적으로, 계속 왔다. 물론 외부 상황의 변수가 컸다. 근데 그걸 핑계 삼고 싶지는 않다. 여튼 흔들린 건 나니까.
겁이 났던 건 번아웃 자체가 아니었다. 이게 자꾸 반복된다는 것. 그렇다면 원인은 그때그때의 상황이 아니라 나한테 있다는 것. 그래서 이번엔 좀 다르게 생각했다. 번아웃을 또 끄는 게 아니라, 이걸 자꾸 불러오는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닐까. 요즘 내가 나를 탐구하기 시작한 이유다.
나는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들여다보니 먼저 알게 된 건 이거였다.
나는 목적과 동기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다. 목표가 보이면 에너지가 쏟아진다. 그게 내 강점이고, 솔직히 지금까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다. 회사는 월급을 주니까 간다. 그리고 받는 대가에 대해 나도 정당하게 돌려주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일한다.
근데 프로덕트를 만들고, 사람들이 쓰게 만들고, 시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 건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돈을 안 줘도 했을 일이다. 해커톤이 그걸 증명한다. 이젠 오래된 얘기지만, 서른 번 가까운 수상의 비결은 별게 아니었다. 평소에도 혼자 시장을 분석하고, 서비스를 뜯어보고, 전략을 그리며 살았던 것. 누가 시킨 것도, 목적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취미였다. 마침 그게 직업과 잘 이어졌고, 일하는 과정에서도 꽤 즐기며 살았다. 남들처럼 출근하기 싫다고 투덜대면서도, 그 안에 분명한 즐거움이 있던 것이다.
문제는 엔진이 하나였다는 것
일이 힘들면 취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냐고. 시선을 분산시켜봐라 라는 조언을 많이 받는다.
근데 최근 내 취미가 프로덕트를 만드는 거였다. 다른 취미들도 있었지만, 육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을 놓았다. 일도 프로덕트, 사이드 프로젝트도 프로덕트, 공부도 프로덕트를 더 잘 만들기 위한 거였다. 그 외의 모든 건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다못해 운동조차도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거였다.
결국 내 도피처와 내 노동이 같은 엔진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엔진이 한 번 꺼지자, 전부 같이 꺼졌다. 일만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좋아하던 것까지 하기 싫어졌다.
두 개가 동시에 무너졌다
상황을 좀 더 뜯어봤다. 왜 하필 이번이었을까.
회사 일은 8시간, 10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머릿속 한쪽에서 계속 일에 대한 생각이 굴러갔다. 퇴근해도, 누워서도. 끝이 없었다. 좋아서 하는 생각이라 멈출 이유를 못 찾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잘 되어야한다. 내가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하필 사이드 프로젝트는 피봇 중이었다. 방향을 다시 정렬하는 시기라,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었다.
나 같은 사람한테 이건 치명적이다. 나는 가시적인 결과로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만든 게 보이고, 누가 쓰고, 뭔가 진척되는 그 감각이 생기면 멈출 줄 모르는 것 같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쪽은 에너지를 무제한으로 빨아가는데 그 결과는 통제가 안 됐고, 다른 한쪽은 결과가 나와줘야 할 곳인데 텅 비어 있었다. 동기로 사는 사람에게 이건 동기의 완전한 고갈이다. 어느 하나만 어긋났어도 버텼을 텐데, 둘이 동시에 맞물렸다. "여튼 흔들린 건 나"라고 했지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했다.
이번엔 받아들였다
긴장이 풀리자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모니터를 보다가 눈이 뿌옇게 흐려졌고, 귀가 아팠다. 일할 때 이를 꽉 무는 버릇이 있는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자 턱이 잘 벌어지지 않았다. 6편에서 말했던, 내가 무너질 때 늘 나오는 그 신호들. 예전 같으면 무시하고 밀어붙였을 거다. 근데 이번엔 안 그랬다.
이번 번아웃은 무기력이다.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머리가 아프면 약을 빨리 먹었고, 병원도 미루지 않고 갔다. 통증부터 빠르게 처리하고, 그다음엔 그냥 쉬었다.
동기를 한곳에 다 걸지 않기로 했다
여기까지 들여다보고 나니 답이 보였다.
문제는 내가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인 게 아니다. 그건 안 바꾼다. 바꿀 필요도 없다.
진짜 문제는 그 동기를 한 종목에 몰빵해뒀다는 거다. 일이라는 단 하나의 자산에 전 재산을 넣어둔 셈이다. 잘 굴러갈 땐 폭발적인 수익을 주지만, 흔들리면 전부가 동시에 흔들린다. 분산이 안 돼 있으니까.
그래서 "일과 삶을 분리하라"는 흔한 조언은 나한테 안 맞는다. 나는 삶을 동기로 채우는 사람이라, 동기를 빼면 그냥 텅 빈다.
답은 동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동기의 출처를 늘리는 것이다. 일 말고도 나를 작게 움직이는 것들을 여러 개 만들어두는 것. 그래야 하나가 꺼져도 전체가 안 꺼진다.
나한테는 그게 웨이크보드다.
처음엔 남들보다 한참 오래 걸렸다. 다들 금방 하는 '일어서기'를, 나는 시간과 노력을 훨씬 더 들여서 겨우 해냈다. 강사님도 이제 그만 오겠거니 싶었을 거다. 근데 나는 한 해에 열 번 넘게 갔다. 결국 일어섰다. 웃긴 건, 취미마저도 이렇게 한 번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다.
근데 그 고비를 넘고 나니, 그제야 진짜 즐기는 취미가 됐다. 지금은 보드를 탈 때 생각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성취도, 가시성도 필요 없다. 그냥 몸과 물만 있다. 잘 탈 필요도 없다. 일이 못 들어오는 유일한 자리. 나한테는 그게 웨이크보드다. 근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동기들을 작동시키지 않았다. 그 좋아하는 웨이크보드도 요즘은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이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번아웃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이건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나를 이해하자. 나라는 사람을 탐구하자.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어디서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어떤 순간에 무너지고, 무엇을 자꾸 반복하는지. 나에게 일이란 무엇이고 지금 일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지금 내가 너무 매몰되고 있지는 않는지, 일 말고 나를 움직이는 다른 동기들은 무엇인지 등등. 이번에 동기를 분산하자는 답을 찾은 것도, 결국 나를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내가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이 필요한것인지 파악한것
프로덕트를 분석할 때도 표면의 현상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에 있는 동기를 보려고 노력한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는지, 진짜 작동하는 원리가 뭔지. 그 시선을 이번엔 나 자신한테 돌린 것뿐이다. 방법은 똑같고, 대상만 '나'로 바뀌었다.
나를 좀 알았다 싶으면, 또 모르는 내가 튀어나온다. 어제의 답이 오늘은 안 맞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이해는 한 번 끝내는 숙제가 아니다. 평생 이어지는 일이다. 가변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제3자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건 진짜 어렵다. 그리고 불편하다. 내 약한 곳, 자꾸 같은 데서 넘어지는 모습을 마주해야 하니까.
근데 할수록 익숙해진다. 그리고 이게 한번 연습이 되면, 다음에 문제가 왔을 때 확실히 더 빨리 빠져나온다. 이번에 동기를 분산하자는 답을 생각보다 빨리 찾은 것도, 그동안 나를 들여다보는 게 조금은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표면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진짜 나를 이해해야 한다. 어렵고 불편하지만, 계속 들여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