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쯤,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이력서, 포폴은 AI 안 쓰고 직접 쓸게요." 나는 AI 맹신론자지만, 이력서랑 포폴은 손으로 쓰겠다고. 깊이가 안 생긴다고, AI 티가 난다고, 면접에서 막힌다고. 근데 두 달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력서고 뭐고 다 AI로 할 거다. 디자인도, 내용 정리도, 다. 두 달 전의 나한테 좀 머쓱한 얘기다. 근데 두 달 사이에 내가 AI를 쓰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거기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금 나는 AI가 너무 좋다. AI덕질중)
원티드가 얼마 전에 채용 트렌드 리포트를 냈다.
인사 담당자 153명한테 물었더니, 2026년 인재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 4위가 'AI·데이터 활용 역량'이었다. 직무 전문성, 팀워크, 조직 기여 의지 다음.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AI를 활용해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가 인재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12월 8일에 공개 / https://v.daum.net/v/20251208161412362)
근데 진짜 이상한 건 따로 있다.
채용 시장은 이렇게 바뀌었는데, 사람들 이력서는 그대로다.
채용 시장은 이렇게 바뀌었는데, 사람들 이력서는 그대로다. 요즘 바빠서 많이 못봐드리지만 가끔 이력서 피드백을 드리곤 한다. 다섯 장을 봐도, 열 장을 봐도, 이전에 봤던 이력서랑 거의 똑같다. 회사명, 직군, 재직기간, 그 안에서 한 프로젝트들.
AI 얘기는 거의 없다. 기업은 AI 활용 역량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지원자는 자기가 그걸 어떻게 쓰는지 안 적는다. 미스매치다. 양쪽 다 손해 보는 미스매치. 왜 안 적을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적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ChatGPT한테 메일 다듬어달라고 하는 거,
그거 별거 아니라고 본다. 또 하나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른다. AI 활용 역량 이걸 한 줄로 어떻게 풀지.
근데 이건 4월에 내가 썼던 그 얘기랑 똑같다. 내 냉장고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거. 분명히 있는데, 안 꺼내본 거다. 그래서 적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내가 지금 AI를 어떻게 쓰고 메타인지 해봐야한다.
내 나름대로 4단계로 나눠봤다. *셩PM 기준
1단계 : 안 쓰거나, 써봤는데 별로였던 단계
회사에서 막아놨거나, 한두 번 써봤는데 기대만큼 안 나와서 손 뗀 사람. AI 별로던데 하고 멈춘다. 내 일은 내가 하는 거지, 라는 감각이 강하다. 주로 웹 기반으로 몇번 쓰거나 검색 대용으로 사용한다.
2단계 : 내 일에 시키는 단계
AI한테 메일 다듬어달라, 요약해달라, 초안 써달라고 한다. 빨라진다. 어떤 일에 AI가 잘 듣는지 감이 있다. 근데 결과물의 주체는 여전히 'AI가 만든 걸 내가 다듬는' 구조다.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손이 빨라진 거다. 여기서 멈추는 사람이 제일 많다. 그리고 솔직히, 여기서 멈추면 이력서에 진짜 적을 게 없다. ChatGPT 활용 경험이 한 줄로 끝나는 이유.
3단계 : 내 일의 범위가 넓어지는 단계
원래 내 일이 아니던 영역을 한다. 마케터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PM이 데이터 분석 스크립트를 돌리고, 디자이너가 카피를 쓴다. 직군의 벽이 흐려진다. AI가 옆 직군의 지식을 채워주니까 내 일의 범위가 넓어진다.
4단계 : 나의 시스템화, 팀의 시스템화
내 일을 잘하는 걸 넘어서, 흐름을 짠다. 워크플로우를 만들고, 자동화를 짜고, 팀이 같이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내가 없어도 시스템이 돌아간다. 진짜 시스템 설계자. 이 과정까지 왔다면 대부분 AI가 뭔지 에이전트가 뭔지 기본 개념의 단어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팀의 구조화까지는 병목이 있을 수 있다. 내 일이 구조화되어있나? 시스템화 되어있나?를 볼 수 있다. 그러면 내일의 집중된 영역이 직접 일을 하는 영역인지, 아님 의사결정에 집중되어있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근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게 있다.
이 단계들이 순서대로 차례차례 올라가는 게 아니다. 1단계 사람이 2단계로 가고, 2단계가 3단계로 가는 그런 깔끔한 계단이 아니다. 이 모든 단계를 크게 돌리는 레버 하나가 있다.
AI를 사고 파트너로 쓰는가, 아닌가. (가장 중요/맛집 비밀 레시피)
나는 두 달 사이에 이게 바뀌었다. AI한테 시키던 사람에서, AI랑 같이 사고하는 사람으로. 이게 바뀌니까 모든 게 바뀌었다. 맥락을 먼저 깔아주고, AI한테 질문을 받고, 다시 생각하고, 답에 피드백을 주고, 거기서 내 생각이 더 정리된다. 결과물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상하게, 다른 일을 할 때도 더 잘된다.
왜냐하면 사고 파트너가 있다는 감각 자체가 일하는 방식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2단계에서 멈추는 사람은 AI를 시키는 대상으로만 본다. 시키면 시킬수록 빨라지긴 하는데, 더 멀리 못 간다. 근데 사고 파트너로 쓰기 시작하면 3단계가 열린다. 옆 직군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모르는 영역을 같이 사고해주니까. 그리고 그 감각이 익으면 4단계로 간다. 워크플로우를 짤 때도 이 흐름의 어디서 사람이 판단하고, 어디서 AI가 처리해도 되는가를 끝없이 같이 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계를 올라가는 비결은 AI를 더 많이 쓰는 게 아니다.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단계를 바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AI라는 객체를 공부해야하기도 한다.
자, 그러면 나는 몇단계인가 확인해보자.
1단계여도 괜찮다. 2단계도 괜찮다. 어디서부터든 위로 갈 수 있다. 근데 시작은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이 보인다.
그리고 이력서에 AI 역량을 적는다는 건, 결국 내가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풀어내는 작업이다. 단계가 안 보이면 못 적는다. 보이기 시작하면 적을 게 많아진다.
다음 편에서는 이 단계를 이력서에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두 달 전엔 직접 쓰겠다고 했던 내가 왜 AI랑 같이 쓰기로 했는지도. 그 사이에 뭐가 바뀐 건지. 두 달 전의 내가 들으면 놀랄 얘기다. 근데 지금 보면, 그때의 나도 틀린 건 아니었다. 단지 AI와 친해지며 알아가며 내가 사고하는 과정,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