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냐 · 주간 콘텐츠

틀려도 괜찮다, 몰라도 괜찮다라고 손을 내밀고 있어요.

셩PM · 2026-05-10
137개의 글이 나에게 알려준 것

1월부터 거의 매일 글을 썼다.

AI 프로덕트를 만드는 PM으로서, 기술을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부딪히기로 했다. 사실 부딪히는것 말고 방법이 없던것도 있다. 남의 글을 읽고, 직접 만들어보고, 틀려보고, 다시 고치고. 커리어, AI, 업무 스터디까지 주제는 다양했지만 원칙은 하나였다. 멈추지 않는 것. 그렇게 5월이 된 지금, 글이 137개가 됐다.


처음에는 시선이 따가웠다.


뭔가를 새로 배우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물음표를 던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좀 더 공부하고 나서 노출되는 장소에 글을 쓰는게 맞지 않아? 글을 쓰려면 하나를 깊이 있게 써야지. 조언처럼 들리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단에 가깝다. 불편해하는 시선.


솔직히, 그런 시선 앞에서 잘못하고 있는 건지, 방향이 틀린 건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주로 내 노력의 방향은 커리어 관련이다. 직업에 대해 나는 잘하고 싶고, 그게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크지 않다. 내 직업이고, 나는 월급을 받고 있고, 그러면 책임을 다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 거기서 효용을 느낀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왕 할 거면, 제일 잘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 노력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보여지는걸 신경쓸 수 있지만 생각보다 나는 파급력이 없다. 내가 뭐라고... 봐봤자 대부분 내 지인인 내 브런치 글, 링크드인에 이미 내가 이런걸 쓴다고 떠날 사람들이었으면 이미 다 떠났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창피해할 시간보다 더 빠른 배움, 성장이 나한텐 필요했다. 모든걸 가질 수 없기때문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건, 그 불편함 뒤에 있는 걸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거다. 누군가는 진짜 절실해서 잠 못 자고 한 고민이었다. 밤새 찾아보고, 틀릴 줄 알면서도 꺼내놓은 결과였다. 그게 틀렸을지언정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 하나면 충분했다. 그 한 번의 들여다봄이 없었다는 게, 나는 분노보다 마음의 크기와 여유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100일쯤 되니까, 공기가 달라졌다.

물음표를 던지던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재단하던 태도가 조용히 리스펙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걸 느꼈다. 누가 말해줘서 안 게 아니다. 대화의 톤이 달라지고, 질문의 결이 달라졌다.

돌이켜보면, 변한 건 주변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른다. 매일 쓰고, 매일 배우고, 매일 틀리면서 나도 모르게 밀도가 쌓였다. 1월의 나와 5월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이렇게 압축적으로 성장한 적이 없었다.


5월이 된 지금, 나는 나 자신이 뿌듯하다.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이 생겼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다. 137개의 아웃풋이 눈앞에 명확하게 있으니까. 머릿속으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이게 맞아'라고 생각만 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나는 실제로 꺼내놓았다. 생각을 글로 만들고, 틀린 것도 공개하고, 매일 쌓았다. 누가 인정해줘서 생긴 자신감이 아니다. 아웃풋이 스스로 증명해준 거다.


여기서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배울 때의 자세.

나는 틀려도 자신감 있게 말하는 편이다. 물론 일부로 틀리는 것은 아니다. 틀리는 게 무서워서 입을 다물면, 배움은 거기서 멈춘다. 물론 틀렸을 때는 인정하고, 시정하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중요한 건 틀린 것 자체가 아니라, 틀린 뒤에 어떻게 하느냐다.

배움의 과정이 예쁘게 일직선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삐뚤빼뚤하다. 돌아가기도 하고, 한참 헤매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결국 끝지점에 도달하면 되는 거다.

그리고 삐뚤빼뚤 간 사람만이 아는 게 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외로운지. 그리고 틀렸을때의 창피함 자괴감 나도 안다.


사람들이 잣대를 들이대는 건, 대부분 초반에 일어난다. 아직 결과가 없을 때, 과정만 보이는 시기. 그때 원래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건 쉽다. 근데 그 잣대는 어디서 온 걸까?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내가 아는게 적당~했을때 그랬다. 내가 이거 알려주면 남은게 없는데, 내가 알고 있는 판에서의 유리한 조건은 지키고 싶고 더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거나 이걸 지키기 위해서는 뭘 해야할지 모를때 견제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난 그 디자인 전공자로 그 어떤 디자이너의 작업도 별로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모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같이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그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확신 하에서 그런 애티튜드는 그냥 나쁜거에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전공을 했으면 전문가인가? 내 경험으로는 아니였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렇게 애정이 크지 않았고 연구하지 않았고 많이 공부하지 않았다. 다만 특정 지식의 일부를 누군가 알려줬기 때문에 빠르게 학습했을 뿐. 하지만 정말 일부분이었다. 특히 AI처럼 매일 판이 바뀌는 영역에서, 작년의 정답이 올해의 오답이 되는 건 흔한 일이다. 결국 대부분의 의견은 누구의 것이든 주장이다.


내 경험상,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는 게 충분한 사람이다. 설명을 못 하거나 안 하는 건, 정리가 안 되어 있거나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유독 이게 심하다. 학벌, 경력, 전공 배움에도 자격을 따지는 문화. 네가 그걸 왜 해?라는 시선 앞에서, 혹은 그거 틀렸잖아. 라는 평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도조차 못 한다. 몰라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나는 지금도 진짜 힘들게 배우는 중이다. 특히 AI 공부가 그렇다. 쉬운 날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안다. 지금 뭔가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게 얼마나 두려운지. 주변의 시선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래서 나는 손을 내밀고 싶다. 틀려도 괜찮다. 몰라도 괜찮다. 같이 가자.

배움 앞에서 기죽지 마라.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은 초반에만 시끄럽다. 그리고 그 사람 또한, 다른 영역에서는 다시 초심자다. 인생이 그렇다 생각보다 공평하다. 100일만 딱 3개월만 매일 하면 공기가 달라진다. 뭔가 시도하는게 무섭고 두렵다면 그냥 그걸 해결하고 해낸 사람, 근데 별볼일 없고 가장 보통의 사람인 내가 떠오르고 그게 누군가의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란다. 최소한 주저함을 없애는 작은 이유가 된다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나누는 과정이 너무 의미있을 것 같다. 만약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면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보려한다.